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7년 전쟁 (문단 편집) === 유럽 외 전장 === 중부 유럽 전선과 달리, 식민지에서는 프랑스군이 압승하고 있었다. 북미 전역에서는 유능한 장군이었던 [[루이 조제프 드 몽캄]]과 프랑스군의 선전으로 영국군은 참패를 거듭하던 상황이었다. 일례로 1758년 [[뉴욕]]주의 [[카리용 요새 전투]]에서 1만 6000명의 영국군이 몽캄 장군이 이끄는 3600명에 불과한 프랑스군에 대패를 당한다. 그러나 영국군은 본국에서의 대대적인 증원과 [[제임스 울프]]라는 뛰어난 지휘관의 등장으로 전세를 역전했다. 특히 프랑스령 캐나다의 중심부인 [[퀘벡]]에 대한 [[공성전]]중 벌어진 [[아브라함 평원 전투]]에서 제임스 울프 장군은 4,400명의 병력으로 5,000명의 병력을 거느리고 있던 몽캄 소장을 전사시키지만 그 자신도 역시 전투 막바지에 전사한다. --[[동귀어진]]-- 피해 자체는 영국이 좀 더 컸지만 영국 해군때문에 병력충원과 보급이 막힌 프랑스군은 더이상 싸울수 없었다. 공군도 없었던 시절이니, 제해권을 내 주어 배후 보급선이 막혀버린 프랑스군의 패퇴는 예정된 수순이었던 셈. 울프의 죽음은 [[윌리엄 피트(1708)|대(大) 윌리엄 피트]] 등에 의해 적극적으로 우상화될 정도로 컸는데, 이 전과를 통해 [[루이지애나]]를 제외한 북미 전역의 프랑스 세력을 소멸시켰기 때문이다. 루이지애나도 먹으려고 했는데 [[황열병]] 때문에 침공을 못한 것이었다. 거꾸로 나폴레옹이 북미 전역에 관심을 가질 수 없었던 것도 이 [[모기]]로 인한 황열병 때문이다. 프랑스도 한때 승리의 기회가 있었고, 영국의 북미주둔군을 절대적인 위기로 몰아넣은 적이 있었으나 영국 함대가 신속하게 병력증원을 해주면서 무위로 돌아갔다. 프랑스 주력함대가 영국 함대에게 격파당해 [[대서양]] 제해권을 영국에 빼앗겨 본국으로부터의 추가증원에 실패한 것이 북미 전역을 결정지었다. 그리고 '''북미 전역'''을 별도로 '''[[프랑스-인디언 전쟁]]'''이라고도 한다. 영국군과 프랑스군 '''모두''' 병력과 보급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서 각기 다른 원주민 부족과 연합했기 때문이다.[* 흔히 프랑스 + [[아메리카 원주민]] vs 영국군으로 알고 있으나 이는 잘못된 것이다.][* 영화《[[라스트 모히칸]]》의 원작 소설이 이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. 그래서 소설 속에서 프랑스군과 동맹한 인디언 부족을 거의 부모안부까지 섞어 무지하게 욕한다. 그리고 그 소설에는 프랑스에 협력한 인디언, 영국에 협력한 인디언이 모두 나온다. 당장 책 제목의 주인공부터가.] '''인도'''에서도 클라이브가 이끄는 영국 동인도회사군이 [[플라시 전투]]에서 승리를 거두어 친영국적인 [[벵골]] 태수를 앉히고, 남인도에서 프랑스의 핵심거점인 [[퐁디셰리]]를 함락시켰다. [[1760년]], 프랑스의 동맹으로 참전한 스페인도 영국군에게 [[쿠바]]와 [[필리핀]]을 빼앗기며 패배를 거듭했다. 영국군은 '''프랑스령 서인도 제도'''를 모조리 휩쓸었고, '''필리핀과 쿠바'''라는 스페인의 [[식민제국]]의 두 핵심지역을 장악했으며, 쿠바에서 막대한 부를 전리품으로 확보해 전시재정에 큰 도움이 되었다. 스페인군은 남미 [[우루과이]] 지역에서 [[포르투갈]]군 수비대를 격파하고 [[브라질]]로 약간 진격했으나 큰 의미는 없는 승리였다. 이로써 [[대영제국]]과 거의 판도가 맞먹던 [[프랑스 식민제국]]은 몰락했다. 그러나 영국의 이와 같은 승리는 모두 '''비유럽 지역'''에서의 것으로, 대륙의 동맹국 프로이센이 패전 직전에 내몰리면서 이와 같은 승리는 빛이 바래고 있었는데..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